[부고] 최재숙 본인상(에코생협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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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레지기 작성일20-12-02 16:09 조회33,459회 댓글1건본문
위 그림에 담긴 내용입니다 (글자로 옮김)
위 그림에 담긴 내용입니다 (글자로 옮김)謹弔(근조)
고이 가소서!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님이 2020년 12월 1일 별세하였습니다.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님이 오늘 별세하였습니다.
에코생협 각 매장 실무책임자 회의를 주재 중 쓰러져 이송되어 심폐소생 시술을 받으셨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소천하였습니다.
고인은 1990년 공해추방운동연합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93년 환경운동연합의 창립 멤버로 참여했으며 이후 환경운동연합 자료정보실장, 총무국장을 역임하고 2002년 환경운동연합 전문기관 에코생협 건설에 참여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활환경운동의 현장을 지켜왔습니다. 지난 32년 동안 단 한 순간도 시민환경운동을 떠난 적 없이 평생을 헌신했던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활동 현장에 있었습니다.
공해를 추방하는 것이 시대의 요구였던 시절, 그 현장에서 시민환경운동이 시대의 요구였던 시절, 그 현장에서 생협운동이 시대의 요구였던 시절, 그 현장에서 고인은 늘 한결같은 열정으로 활동했습니다.
일생, 사람과 자연을 위해 쉼 없이 일하고
일생, 사람과 자연의 약자들을 위해 애써온
사람, 고 최재숙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빈소: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8호
발인: 12/4(금) 07:00
회원생협 소식 / 두레 2021.01 / 5
故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이사님 추모의 글
지난 12월 1일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故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이사님을 추모하는 글을 싣습니다. 故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이사님께서 일생 동안 몸소 보여주신 환경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한결같은 헌신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생협운동가, 故 최재숙을 기리며]
글. 박현철(에코생협 이사, 월간 함께사는길 대표)
고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이사가 지난 12월 1일 직무회의 도중 쓰러져 병원 이송 중 소천하였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활동 현장에 있었던 그이는, 일생을 시민환경운동과 생협운동에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고인은 1991년 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3년 환경운동연합 창립 이후에는 NGO 최초의 사이버 환경운동을 담당하는 조직(현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정보센터)을 구상하고 건설해 책임을 맡는 등 활동과 운영 파트에서 두루 활동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2000년 동강댐 백지화 운동의 성공 이후 높아진 시민들의 환경생태에 대한 관심을 생활환경운동으로 승화할 방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고인은 생협 창립의 실무 책임자가 되어 에코생협 창립 준비를 맡았습니다. 2년의 준비 끝에 2002년 10월 17일 환경운동연합 전문기관 '에코생활협동조합'(이하 에코생협)이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두레생협연합회의 일원이 된 에코생협의 상무이사로 취임한 그이는 열정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에코생협 창립과 동시에 자체 브랜드의 친환경 공산품을 만들어 매대에 올리고 주문발송에 의한 판매를 통해 먹거리 위주의 생협 매장의 풍경을 바꾸었습니다. 누하동 251번지 종로매장 하나에서 시작된 에코생협은 매장의 수와 조합원의 수를 꾸준히 늘려갔습니다. 2020년 현재 에코생협은 서울과 지역에 6개 매장 1만4688명의 조합원을 둔 생활환경운동 조직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는 물품만 팔지 않는다. 환경을 지키는 생활운동 생협, 그게 우리 경쟁력이다." 고인이 틈만 나면 강조했던 활동 신조였습니다. 에코생협은 2002년 창립 이후 일관된 '폐기물 감량 캠페인'을 전 매장에서 강도 높게 진행해왔습니다. 포장재 감량을 위해 과일과 곡류의 무포장 소분 판매를 가장 빨리,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시했고, 생협과 환경운동연합 여성위원회와의 콜라보를 통해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들기'를 꾸준히 펼쳤습니다. 또한 '플라스틱 포장재 프리 특판전' 등 환경공익을 생각하는 활동을 에코생협의 기치이자 활동 기조로 만들어왔습니다.
고인은 생활환경운동조직으로서 생협운동이 나아갈 길이 '조합원의 삶 자체를 친환경으로 바꾸는 앎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친환경 생활을 꿈꾸는 시민들을 위해 그이는 활동과 자기 학습을 통해 얻은 정보와 지혜를 정리해 두 권의 저서(『친환경으로 키우는 우리아이』, 『친환경 음식백과』)로 펴냈습니다. 최근 수년간 두레생협 요리 동영상 사이트에, 두레생협이 공급하는 건강한 먹거리로 만든 집밥요리를 업로드(http://m.site.naver.com/0Ee9J)해온 것도 같은 맥락의 활동이었습니다.
또한, 고인은 생협운동의 비전이 '사회적 돌봄 조직으로서 생협 조직의 확장과 심화'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2016년 에코생협은 과천 '바오밥' 그리고 군포의 '엄마친구네'와 컨소시엄을 이뤄 '지역 아이 돌봄 서비스'를 진행했습니다. 정부사업이나 민간기업의 영리사업으로만 존재하던 '돌봄 사업'에 생협이 최초로 진출한 사례입니다. 2017년 에코생협은 총회에서 조합원 활동 부문의 최우선 사업으로 '돌봄 서비스' 사업을 공식화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고인은 "물품에서 서비스로 생협의 사업과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는 데 우리 시대의 요구가 있다"고 천명했습니다.
언제나 시대의 요구 앞에 헌신해온 사람, 고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이사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비전이 두레생협의 활동 속에서 현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언니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
글. 고은주(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 전 울림두레생협 상무이사)
믿을 수가 없어 상무님을 뵈러 빈소에 자꾸 가게 된다.
슬며시 미소 짓고 계신 상무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채식을 배려해줘~"
늘 챙기지 못하는 실무자들에게 한 마디 하시고, 씨~익 웃고 넘어가는 상무님이다.
먼저 챙기지 못한 게 단지 도시락뿐이었을까?
상무님 빈소 앞에서 전화 한 통화 먼저 걸지 못했던 내가
일없이 안부전화 한통 드리지 못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상무님은 일 없이도 먼저 전화주시고, 놀러오라고 하고, 휴가 내서 밥해주시고,
가장 오래된 상무님이자, 가장 후배들을 아끼고 챙겨주는 분이었다.
두레생협의 원칙을 만들고, 지키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상무이사 회의는 언제나 치열했고, 지난했다.
융통성이 부족한 나는 좌절도 하고, 원망도 생겼다.
"그래도 너무 가지는 말아야지"하며 언제나 조정과 협력의 방법을 찾던 분이셨다.
힘들어했던 상무이사 역할을 잘 마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상무님의 배려와 지지가 있었던 걸 난 미처 몰랐다.
그걸 빈소 앞에 서서야 깨닫는다.
상무님은 생협 1세대 상무이사님들 중 유일하게 현직에 남은 분이셨다.
같이 시작했던 분들이 떠난 자리가 외롭고, 의지할 곳이 필요하셨을 텐데도 말이다.
조합원과 사회의 트렌드를 읽고, 생협의 가치를 지키며,
사업의 동력을 찾고, 후배들을 격려하고, 실무자들과 토론하는 현장 활동가였음을 증언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존경한다.
우린 공감대가 많았다.
여성이라서, 사업구역이 서울이라서, 적자가 발생해서, 종로점과 성산점이 비슷해서,
단출하게 살아서, 집을 지어봐서, 그릇을 좋아해서, 그루 옷을 좋아해서
언니라고 부를 걸. 재숙언니. 고마워요. 잊지 않을게요.
(사진 설명) 시민사회단체 옥시불매 2차 집회 — 일시 2016.5.16.
일생, 사람과 자연을 위해 쉼 없이 일하고
일생, 사람과 자연의 약자들을 위해 애써온 사람
故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이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림 설명 — 故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이사 부고 · 두레 소식지 2021년 1월호 추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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